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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스트 기사] 도봉산 (우이암 이 아니라) '관음봉 사모바위' 로 불러야 한다

서울포스트 2013. 1. 9. 21:30

[탐사] 도봉산 관음봉 우이암(牛耳岩) 시산제 산행
(고증에 의해) 도봉산 관음봉(觀音峰 542m) 사모바위(思慕岩사모암) 시산제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3/01/06 17:10:03)

[탐사] 도봉산 관음봉 우이암(牛耳岩) 시산제 산행
(고증에 의해) 도봉산 관음봉(觀音峰 542m) 사모바위(思慕岩사모암) 시산제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 우이령(소귀고개)을 기점으로 오른쪽에 있는 도봉산. 도봉산 남방 우뚝 솟은 저 봉우리는 북한산의 보현봉 역할로, 현재는 무명이나 고증에 의해 '관음봉(觀音峰 542m)'으로 불러야 하며 우이암이라는 바위는 '사모바위'라고 해야한다. ⓒ20130105 세상을 향한 넓은 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우이암은 이제 '관음봉(觀音峰) 사모바위(사모암思慕岩)'로 불러야

오늘이 영하 5도정도니까 근래들어 따순 날씨다. 지난해부터 몰아 둔 산행을 시산까지 겸해 눈쌓인 도봉산 우이암으로 정한 것은 그 근처에 도봉산 조망이 빼어난 곳이 있다는 수소문과 우이암에 대한 '이의' 정리 차원이다.

도봉산 우이암은 많은 사람들이 소귀같지 않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그렇게 부르고 기록하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러나 '소귀바위'로 불러서는 아니될 일. 현재 우이암은 소귀같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어느 각도에서 그처럼 보인다고해도 귀 하나만 가지고 '소귀바위(우이암牛耳岩)'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 비슷한 바위 두 개가 한 쌍을 이뤄야 우이암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행히 오늘 등산을 하면서 옛 명칭의 근거를 찾았다. 봉우리 아래 원통사 안내문에 우이암은 '기도하는 형상'으로 원래 '관음봉(觀音峰)', '사모봉(思慕峰)'으로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정리하자면, 무명의 봉우리는 '관음봉(觀音峰 542m)'이며 기도하는 형상의 바위는 '사모바위(사모암思慕岩)'라고 불러야 한다. (<-- 2013년 1월5일 서울포스트 양기용 정의)

이 '관음봉 사모바위'는 도봉주능선,보문능선,관음봉능선(현재 지도에는 '우이남능선'으로 돼 있으나, 이도 '우이암능선'을 잘못 표기한 것임)의 분기점에 위치한다. 북한산의 보현봉처럼 도봉산 최남단에 우뚝 솟아 웬만한 곳에서 다 보이며, 관음봉은 북쪽에 병풍처럼 펼쳐진 도봉산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거점이다. 또한 앞뒤로 북한산국립공원의 북한산지구와 도봉산지구를 자세히 감상할 수 있는 최적지이기도 하다.


실제 아래 우이동(牛耳洞)은 도봉산과 전혀 무관한, 북한산 정상부의 백운대와 인수봉이 '소(牛)의 두 귀(耳)' 같다고해서 얻어진 동네이름이다. 그래서 그 아래로 흐르는 개천을 소귀천(우이천牛耳川), 영봉까지의 능선을 소귀능선(우이능선牛耳陵線), 고개길을 소귀고개(우이령牛耳嶺), 우이천 위 계곡을 소귀계곡(또는 소귀천계곡)이라고 한다. 이는 도봉산지역에 '우이'라는 지명이 들어갈 이유가 하나도 없음을 말해준다.

▲ 가운데 우이령(소귀고개)을 기점으로 좌측은 북한산, 우측은 도봉산 ⓒ서울포스트
▲ 2011년 북한산에 '서울포스트길'을 개척하면서 우이동에서 본 도봉산. 가운데 '관음봉'과 '사모바위'가 우뚝 솟아있다. ⓒ서울포스트
▲ 작년 도봉산 다락능선에서 본 '관음봉'과 '사모바위'. 뒤로 북한산 ⓒ서울포스트
▲ '우이동(牛耳洞)'은 북한산 백운대와 인수봉이 '소 귀' 같다고해서 얻어진 동네이름이다. 방학동(放鶴洞)도 학이 노닌다는 데서 붙여졌다. 사진은 북한산 아래 우이천 상공을 날으는 왜가리? 두루미? 학? ⓒ서울포스트
▲ 진안 마이산(馬耳山)도 말 두 귀를 닮았다는 데서 유래 ⓒ善果林會

천년고찰 원통사(圓通寺)

『원통사 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 전통사찰로서 신라 경문왕 3년(갑신864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고려 문종 7년(계사 1053)에 관월대사가 재창, 조선 태조 원년(임신 2392년)에 천은선사가 삼창하였다. 이후 조선 영조, 순조, 고종 등 후대로 내려오며 여러 번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순조 10년(경오 1810년)에 청화대사가 중창 후 나라에 큰 경사가 있자 <나라와 산천의 은혜를 갚았다>는 뜻으로 보은사(報恩寺) 라 부르기도 했다.
원통(圓通) 이란 '절대의 진리는 모든 것에 두루 통한다'는 뜻으로 관음보살의 덕을 칭송하여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경내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기도했던 석굴이 있으며, 약사전 아래 거북바위에는 태조가 기도를 마치던 날 천상의 상공(정승)이 되어 옥황상제를 배알하는 꿈을 꾸었다하여 새겼다는 <상공암(相公岩)>이라는 글씨가 있다.
원통사 는 예로부터 좌우에 수락산과 삼각산을 거느리고 한강을 바라보는 도봉산의 최고 길지에 자리잡은 수행기도처로 알려져 왔으며, 역대 숱한 선지식과 제현들이 거쳐간 관음기도 도량이다. 무학대사를 비롯해서 근래에는 만공, 동산, 춘성 등 선지식께서 지견을 얻으셨고, 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냈던 조현명, 서명균, 정이검 등이 국사를 논하며 심신을 닦았던 곳으로 당대 유학자들 사이에 명소로 이름 높았다.
관음보살이 부처님을 향해 기도하는 형상을 한 바위봉우리는 현재 우이암으로 불리고 있으나 원래는 <관음봉(觀音峰)> 또는 <사모봉(思慕峰)>으로 불리었다. 호랑이, 코끼리, 두꺼비, 코뿔소, 학 등 각종 동물의 형상을 한 바위들이 관음봉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이곳은 천혜의 관음성지이며, 오늘도 관음보살의 원력과 가피가 이곳을 찾는 모든 이와 항상 함께 하고 있다.』


오늘 산행에서 도봉산 뷰포인트 라는 곳은 찾지 못했다. 그러나 보석 하나를 발견했다면 이 원통사다. 처음 표지판을 보고 조그만한 암자정도로 생각했으나 이 곳에 오르면서 놀라움으로 변했다.

온통 바위사이에 소박한 법당, 관음봉을 배경으로 한 짜임새있는 경내며, 경내에서 바라보이는 전망은 한국 사찰 중 으뜸에 속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범종루가 사찰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문화재보호로 사진촬영을 금한다는 안내문이 있는데, 이렇게 유서깊고 아름다운 사찰을 널리 알리는 게 중생에 대한 보시 아닐까 생각된다.

눈빛이 밝혀준 하산길 발걸음은 가벼웠다. (龍)

※ 추기 : 2013.1.7일 원통사로 전화하여, "사찰 뒤 바위를 '우이암'으로 할 아무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으며, 원래대로 안내문에서부터 '관음봉 사모바위'로 고쳐 불러야한다"고 강력 권고했습니다.

▲ 북한산 정상부 삼각봉 ⓒ서울포스트
▲ 북한산 상장봉능선의 왕관봉 ⓒ서울포스트
▲ 좌측 관음봉과 사모바위 ⓒ서울포스트
▲ 원통사 범종루와 '사모바위' ⓒ서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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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아한 경내와 '사모바위' ⓒ서울포스트
▲ 약사전 아래 '상공암(相公岩)' ⓒ향기로운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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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내 멀리 불암산 ⓒ서울포스트
▲ 도봉산 정상부를 향해 보살이 기도하는 형상의 '사모바위'. 자연물 중 가장 사람에 가까운 물상같으며 북한산 사모바위보다 훨씬 정밀하다. ⓒ서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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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쪽 ⓒ서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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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월5일 서울포스트가 새로 정의한 도봉산 남방 최고봉(빨간 원형 안) - 관음봉(542m), 사모바위(구 우이암) 와 관음봉능선. '출발7' 루트를 따름 ⓒ서울포스트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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